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해안 더비 (문단 편집) === 2000년대 이전 === 포항 스틸러스는 1973년 실업 축구 시절부터 [[대경권|대구/경북]]을 연고지로 잡고 오랫동안 [[경상도]]에서 군림해온 축구 강자였다. 그러던 와중 1983년 경기, [[인천]]을 연고지로 출범하였던 현대가 1987년 [[강원도]]로 연고지를 변경했다가 도시 연고제가 시행된 1990년, 모기업(당시 [[현대자동차]])의 근거지인 울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미묘한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. 안 그래도 그 이전에 [[김종부]] 스카우트 파동으로 울산만 허탕을 치고 김종부는 울산도 부산도 아닌 제3구단인 포항으로 가면서 감정이 썩 좋지는 않던 상황이었다. 거기에 두 구단의 모기업 간의 미묘한 감정의 골도 한몫하고 있었다. [[포스코]]에서 생산된 [[철강]] 제품은 울산의 현대자동차 및 중공업에 쓰이는데, 현대가 [[당진]]에 [[현대제철|제철소]]를 마련하기 전에는 포스코에서 부르는 대로 원자재인 [[강판]]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. 현대가 강판을 자체 수급하기 시작하면서 포스코의 경영 실적도 떨어지기 시작했기에 더더욱 감정이 안 좋아졌다. [youtube(4BP4IidwAgM)] [youtube(8wRujR-19U0)] 그렇게 미묘한 감정이 싹틀 무렵 1998년 [[K리그]] 플레이오프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라이벌 의식이 폭발하게 된다. 1, 2차전 모두 K리그 역대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플레이오프였는데 1차전(포항 홈)에서 1:1로 맞선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 1골씩을 주고받았고 경기 종료 직전에 포항 [[백승철(축구선수)|백승철]]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3:2로 포항이 극적으로 승리하며 1차전을 마쳤다. 이어 3일 뒤 울산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는 역시 1차전과 마찬가지로 1:1 동점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, 당시 울산의 [[골키퍼]] [[김병지]]가 [[프리킥]]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하여 극적인 헤더 골을 성공시키며 1,2차전 합계 4:4 동점을 만들어내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[* 당시엔 [[원정 다득점 원칙]]이 없었다.] 결국 연장 이후 [[승부차기]]에서 울산이 승리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게 된다. 그 이후에도 고비 때마다 운명의 장난처럼 만나는 두 팀의 대결로 인해 확고부동의 라이벌로 자리잡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K리그를 대표하는 더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. 공교롭게도 김병지가 포항으로 이적하고 난 뒤, 울산이 한동안 포항을 상대로 승리를 잘 내지 못해서 김병지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